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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문연화루 팬픽] 이연화 그 후...

무명의 일반인 2025. 4. 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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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의 하류, 작은 배 안에 여윈 돌부처처럼 앉아 있는 청년이 내일이면 당도할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이가 죽고 이연화가 태어난 곳.'

사람이 죽는 것을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연화는 돌아가는 중이었다.

 

배에 물이 부딪히는 소리와는 다른 철썩거리고 파닥거리는 소리가 자꾸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아차차..."

흔들거리는 배의 뒤편으로 그는 위태롭게 걸어갔다. 이미 그의 기력은 모두 바닥이나 서 있기조차 힘들어 가붓하게 흔들리는 소매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주저앉듯 무릎을 꿇은 이연화는 어부가 두고 간 물고기가 담긴 통을 바라보았다.

눈앞이 점점 흐릿해져 물과 물고기를 분별하지 못했지만 때마침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물고기의 위치를 대강 알 수 있었다.

엄한 생명들을 저승길로 데려갈 뻔했단 생각에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길동무는 필요 없네, 잘 가시게."

얼마 되지 않는 물고기들의 성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놈들은 다소곳이 붙들려 강으로 돌아갔고 어떤 놈들은 파닥거리며 반항하는 통에 이연화의 낡고 얇은 소매를 흠뻑 적셔버리고 말았다.

한바탕 작은 전쟁을 치룬 이연화는 기운이 달려 엉금엉금 기어 다시 뱃머리 쪽으로 돌아가 앉았다.

 

 

어느새 양쪽 산기슭을 타고 내려온 안개와 물 위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축축하고 서늘하게 그를 포위했다.

이연화는 한기를 느끼며 무릎을 끌어안고 점점 시야를 점령해가는 검은 덩어리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려서 고아가 된 일, 사제들, 완만과 만난 일, 강호의 일들......

이연화 안의 한자락 남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냉혹한 검무를 추는듯했다.

가벼운 기침과 함께 울컥 피가 나왔다.

또다시 울컥 피를 토하길 몇 번 반복한 뒤에야 마른 그의 몸이 배 안으로 쓰러졌다.

 

죽음을 앞두고 가느다란 숨을 쉬고 있을 때

배를 산 후, 육지에 내려줬던 어부가 이연화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 있냐'고 물을 힘도 없었지만 이전의 순박한 어부의 모습과는 달리 탈속한듯한 얼굴을 보고 이연화는 의문을 삼켰다.

 

"다시 묻겠다. 어디로 갈 것이냐? 여전히 아무 데도 가지 않을 참이냐."

 

그의 질문에 이연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터져 눈물이 흘렀다.

두 눈을 지긋이 감은 그는 고집스레 고개를 저어 거절의 뜻을 밝혔다.

 

'하늘에도 지하에도 가지 않고 세상에도 남지 않겠소.'

 

어부의 따뜻하고 큰 손이 이연화의 몸을 여기저기 만지고 훑어내려가는 동안 그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 년 뒤.

동해의 바닷가 가조촌.

 

바다로 떠내려간 작은 고깃배엔 여윈 청년이 홀로 혼절해 있었고 어부들이 그를 구해낸 뒤 수소문 중이던 방다병에게 인도된지도 한참이 지났다.

 

처음 정신이 들었을 때 이연화는 자신의 상태를 보고는 몹시 놀랐었다.

머리는 예전보다 오히려 더 맑은 상태였고 시력은 물론 몸의 모든 병과 상처가 나았지만 오른팔과 무공은 쓸 수 없었다. 평범한 사내의 몸은 그동안의 풍파만 흔적으로 남아 약해져 있을 뿐이었다.

 

어부들이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이상이, 이 연화...... 분명 자신인데 타인처럼 느껴져 그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기억을 잃었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걸로 여겼다.

"이연화!"

마침내 이연화를 찾은 방다병은 그를 끌어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당황한 이연화는 한 손으로 그를 가만히 다독거렸다.

 

그 후 지난 생의 여러 인연들이 다시 그를 만나고자 했다. 시문절, 초자금, 완만, 불피백석......

지난 생이 바다로 흘러가버렸듯 옛사람도 흘러간 뒤였다.

지난 생의 마지막 때 응어리를 모두 피와 함께 토해낸 덕일까... 그들을 봐도 무미건조했다.

다만 그들의 빚진듯한 미안함을 읽었기에 이연화는 적당히 기억을 잃은 척, 그들에게 후회라는 응어리가 지지 않게끔 대했다.

 

하지만 방다병만은 이연화에게 달랐다. 15세 소년이던 시절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지켜본 아이......방다병에게만은 그가 빚진 사람이었고 방다병이 가진 그 순진한 정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을 끊으려 일부러 더 다른 사람들보다 못 알아차리는 척할 수는 있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그가 하고자 하는 데로 두기로 했다.

 

과거 이연화는 방다병의 말대로 사기꾼이라 불려도 정말 사람을 속인 일은 없었지만 지금은 사기꾼이 되어 모두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적비성 만은 완전히 속일 수가 없어 기억을 잃은 체 하는 것 말고는 육신의 상태를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연화의 몸은 오른팔을 못 쓸뿐더러 무공을 쓸 수 없는 보통의 육체가 되어버렸는데.

하지만 이 집요한 무공 고수는 그가 기억 외엔 정신이 온전함을 알고는 무공을 직접 못 겨루는 대신 바둑으로 결판을 내기 위해 주기적으로 이연화를 방문했다.

 

 

어느 날 가조촌으로 모산 장문이 된 왕복이 이연화를 만나러 왔다.

왕복은 방다병이 이연화 곁에 붙여둔 하인들을 따돌리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 방다병을 기다린후 말을 전하라 했다.

 

"이연화의 머리에는 음침하고 삿된 것이 들어있소, 모산의 귀신을 쫓는 부적을 태운 물을 먹이면 나을 것이라고 전해주시오.

아... 다만 부마께서 그 비용을 감당할지 모르겠구려."

대숲 산책로까지 따라온 하인들은 은벽돌과 진주를 박아 만든 길을 보고 놀라 고개를 끄덕이곤 집으로 돌아갔다.

 

"저와 부마는 모두 세월의 흔적이 있지만 당신만은 세월의 흔적이 없군요. 그 연유를 아십니까?"

모산에 전세영동으로 남아야 해서 방다병과 이별할 때 울던 그 어린 소년은 어느새 선풍도골의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그를 속일 수 없단 걸 직감한 이연화는 가만히 한숨을 쉬고는 편안하게 털어놨다.

"도가, 불가의 수련 방법과 내공을 수련하는 방법은 비슷하지요. 양주만을 만들고 연마하는 동안 나는 이것이 불로에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소. 하지만 공력이 남지 않은 보통의 몸이 된 지금까지 영향이 남아있는 이유는 모른다오."

 

왕복이 가만히 웃으며 이연화의 손을 잡고 자신이 만든 은벽돌과 진주가 박힌 길에 들어서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불가와 인연이 있어 약간의 가르침에 크게 깨달아 원한을 잊고 이연화로 살며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주화입마에 빠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와 비슷한 패신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본래 패신 상태에 들어서면 자기를 잃기 때문에 원한을 잊기는커녕 자비행을 할 수 없죠.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해냈습니다."

"그래서 왕장문은 나를 고치려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게 할 거요?"

왕복과 나란히 걷던 이연화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봄바람처럼 웃었다.

"이미 음침하고 삿된 것을 당신이 이겨냈는데 부적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왕복은 이연화와 마주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어렴풋한 술기운에 눈앞이 가물거리고

깊은 밤 비바람이 등불 흔드네.

진주 한 말은 부족하고

큰 꿈은 알 수 없이 아득하구나.(길상문연하루 하권 양주만 中)"

 

이연화가 다시 길을 걸으며 오래전 지었던 시를 흥얼거리자 왕복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눈을 감고 시를 음미했다.

시가 끝나자 이연화가 되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이오?"

"당신의 소식은 일찍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부마가 당신을 고치기 위해 사방팔방 치료할 자를 구했으니까요. 저는 일부러 몇 년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은 패신 상태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신이 다시 기가 되고 기가 다시 정이 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땅에 발을 두고 보통 사람으로서 안정을 취해야 했죠.

이연화 당신은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없고, 그럴 자격도 안된다고 생각하셨나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고문의 동료들의 죽음과 적으로 만난 이들의 죽음까지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더불어 그가 마주한 많은 사건들의 인물들은 무슨 이유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한많은 삶을 끝냈단 말인가... 또 나는 무엇이라고 그들과 달리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이연화는 이 아픈 경험들로 얻은 근원적인 질문을 품고 다른 것들은 버렸었다.

 

"사람이 바닥을 치고 비워지면 도를 담을 그릇이 되죠. 당신은 십여 년 동안 자기도 모르게 도를 담고 일치화되며 도의 자비를 본능적으로 베풀었습니다. 이제 도가 당신을 다시 낳았고 당신은 이상이도 예전의 이연화도 아니지요. 돌려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또한 상도 있죠."

"왕복, 당신은 넘어진 적이 없습니까?"

"누구나 넘어지는 경험을 하는 건 아닙니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연화가 아주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미끄러져 넘어진 적이 없습니까?"

"진주 한 말이 부족하니 당연히 미끄러진 적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왕복이 발로 길을 툭툭 건드렸다.

"저는 그래서 진주를 땅에 박아두었습니다. 사람은 원래 태어날 때 한정된 진주의 양을 갖고 태어나지요. 그것을 어떻게 소진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달라집니다. 진주를 모두 소진하면 생은 끝이 나지요. 하지만 당신과 같이 무심한 자비는 도를 닮아 진주를 계속 시절에 맞게 공급받게 됩니다. 이것이 당신이 아직도 불로를 유지하는 이유입니다."

 

왕복이 말을 마치고 합장을 하자 길에 박혀있던 진주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떠오른 진주들은 곧 스스로 흙을 털어내고 본래 진주가 아니었던 듯 점점 투명하게 빛이 나더니 일제히 이연화의 몸으로 쏟아지듯 빨려 들어갔다.

쓰지 못했던 오른팔이 회복되며 전신이 가벼워지고 알 수 없지만 익숙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몇 년 전 죽어가던 그의 몸을 훑던 어부의 손길과 닮아있었다.

 

"이제 자기와 맞는 곳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왕복의 말이 마치기 무섭게 방다병이 이연화를 소리쳐 불렀다. 방다병은 그들을 찾다 마침내 발견했지만 이연화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에 놀라는 한 편 어떤 신비한 모산의 술법으로 그가 고쳐지는 것이라 여기며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돌아간다니, 낫자마자 이별이라니 방다병의 마음에 울컥 서운함이 올라왔다.

"이연화! 다 나은 거야? 아님...... 나를 속인 거야?"

가볍게 떠올랐던 이연화의 발이 다시 땅에 닿으며 방다병을 향해 걸어왔다. 다가오는 이연화의 표정은 묘하게 슬퍼 보이기도 미안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방다병 앞에 섰을 때 이연화는 마치 함께 절에서 토끼를 훔치던 때로 돌아간듯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정말 똑똑해."

"이제 떠나는 거야?"

"그래,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했다."

담백하고 간결한 끝인사를 마친 이연화는 몇 걸음 걷고 뒤돌아서 더니 그대로 구름에 휩싸여 모습을 감췄다.

 

 

이연화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던 방다병은 왕복을 보고 물었다.

"얼마를 지불하면 돼?"

"당신이 지불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사실 부마께 지불하러 왔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이연화는 내가 강호에 나와 처음 사귄 친구니까 돌보는 건 당연한 거였어."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려서부터 그와 함께 있었기에 그가 패신의 과정을 고독하지 않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 은벽돌은 제가 이연화 대신 당신께 남기는 것입니다."

방다병은 서운함에 부아가 치밀어 "그럴 필요 없데도!"라고 소리쳤다.

왕복은 미소를 거두고 자못 진지한 얼굴로 방다병에게 말했다.

"신선이 탄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당신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이연화에게 남은 세속의 끈은 당신뿐이었으니 정리를 해야 하겠지요. 받아두시지요, 부마."

말을 마친 왕복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는 방다병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상이가 다시 강호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이상이를 신선 밑에서 수련하다 돌아온 것으로 여겼지만 사실 이상이였던 이연화는 골골 되는 처지였다. 이제 이연화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를 비극적인 운명을 마감한 젊은 영웅이라고 하는 통에 방다병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매번 이렇게 거꾸로 알다니.

 

이연화가 사라지고 적비성은 몇 년 더 금원맹을 이끌다 종적을 감췄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적비성이 절세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은거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무튼 그 후로 적비성은 다시는 무림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고 그의 숙적과 함께 언제나 강호가 그랬듯 잊혀 갔다.

 

30년 후, 모산 장문 왕복이 등선했다는 소문이 세상에 퍼졌다. 세상 사람 절반은 그의 등선을 믿었고 나머지는 예전에도 전 장문이 등선을 꾸민 일이 있고 왕복이 과하게 비용을 요구했던 걸 떠올리며 거짓으로 치부했지만 방다병은 예전에 이연화의 일을 목격한 바가 있어 그 소문을 믿었다.

 

다시 20년이 더 흐른 후 방다병과 시문절의 머리에도 흰 서리가 내려앉은 나이가 되어있었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막역한 벗으로 지내며 만나면 이연화를 추억하곤 했다.

다복하게 인생을 보내던 두 사람은 어느 날 비슷한 시기 노환으로 앓다 세상을 떠났는데 그들에 관해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들이 아프기 전 선인 같은 청년이 두 사람을 찾아왔고 그다음 날부터 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이좋던 친구답게 둘은 같은 날 떠나게 되었다.

 

시문절이 오전에 떠나고 방다병은 늦은 밤 아내인 공주의 간호를 받으며 있었다.

공주가 잠시 꾸벅꾸벅 조는 사이 문이 열리며 죽었다는 시문절이 젊었던 과거의 모습으로 이연화와 함께 방다병을 찾아왔다. 방다병은 그들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웃으며 말했다.

"이 사기꾼 신선아, 장생불로의 선단이라더니...... 가짜 신의 행세는 신선이 되고도 못 고친 모양이지?"

시문절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연화는 사기꾼이 맞아, 우리에게 의선이 되었다더니 알고 보니 검선이었어. 적비성을 기억하지? 그 자가 사라진 것도 이 사기꾼 때문이었어. 적비성은 대련해 준다는 꾐에 넘어가 은거하여 수련하더니 기어코 신선이 되고 말았더군."

세 사람은 공주가 깨지 않게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내 차례인가......"

이연화는 부드럽게 웃으며 "너는 나를 따라가게 될 거야. 시문절은 이미 가르쳐 줄 신선을 만나고 오는 길이야."

"잘 됐네, 시문절은 평생 급제를 못하더니 시선이 되겠군."

말을 마친 방다병이 아쉬운 듯 미련이 담긴 손끝으로 공주의 역시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손길에 깜빡 잠이 깬 공주는 방다병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어때요? 물을 줄까요?"

시문절과 이연화는 공주가 놀랄까 몸을 감춘 상태였다.

"이연화와 시문절이 찾아왔어. 약속대로 나를 데려가겠다고 하는군."

놀란 공주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순식간에 고였다. 이전부터 이연화의 일을 듣고 믿고 있던 공주는 이연화의 첫 방문 때 이미 방다병의 선택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당신은 내 곁에 평생 머무르려 자제하며 살았죠. 이제 자유롭게 떠나도 좋아요. 나는 괜찮아요, 우리 아이들이 있으니."

"억지로 자제한 건 아니었소. 내가 좋아서 그런 거지. 지금 떠나는 것도 당신을 덜 좋아해서 떠나는 건 아니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이왕이면 벗을 따라가고 싶었소."

"알아요."

공주가 방다병의 얼굴에 뺨을 대고 다독거리며 말했다.

"너무 잘 알아요,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가요."

공주의 말이 마지막 허락이 된 듯 방다병의 눈이 감겼다.

 

 

구름을 타고 함께 날던 세 사람은 곧 헤어지게 되었다. 시문절이 스승과의 약속대로 돌아가야했기 때문이었다.

이연화와 둘이 남게 된 방다병은 15살 처음 그를 만난때의 모습으로 자기도 모르게 변화되었다.

"이연화! 우리가 할 일은 뭐야?"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데도 한계가 있고 신선이 사람을 구하는데도 한계가 있지. 우리는 적비성과 합류해서 하늘의 빛을 가리는 두꺼운 안개를 걷어낼 거야. 하늘의 빛이 인간계로 직접적으로 들어간다면 세상과 사람에게 좋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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